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류큐 왕국 (문단 편집) == 개요 == [[동중국해]] 남단의 [[류큐]] 제도를 영토로 하여 왕정 체제를 꾸렸던 [[국가]]. [[조선왕조실록]]에도 '''유구국'''(琉球國, 류큐국)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0년대]]에 [[일본 제국]]에 병합되었다. 류큐는 병합전인 고대에도 일본과 언어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였다. 현재 일본 [[오키나와현]]이 되어 있으나 여전히 그 일대를 류큐라고 부른다. (류큐국 영토 일부였던 [[아마미 군도]]는 오키나와현이 아닌 [[가고시마현]]에 속한다.) 류큐인은 아이누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 고대 조몬인의 유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대 조몬인은 동남아시아에서 현대의 오키나와, 쓰시마, 홋카이도로 이주했다.[[https://v.daum.net/v/gDt6b9Jwjj?f=p|#]] 이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도래인(이후 야요이인)이 지배권을 가지면서 조몬인의 인구가 줄어든걸로 보고 있다.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조선]]에도 종종 조공을 바치거나 표류한 어민들을 송환하는 등 동아시아 세계의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을 맡고 있었다. 최대 영토는 현재 [[가고시마현]]에 소속된 [[아마미 군도]]까지 포함됐었다. 하지만 이후 사쓰마 번이 류큐 왕국을 침공, 결국 류큐 왕국이 아마미 군도의 지배권을 내주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마미 군도]] 문서를 참고할 것. 2차 대전 직후 미군은 류큐를 일본에서 떼어내고 미국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만들었는데, 오키나와현과 아마미 군도는 물론이고 한 번도 류큐의 지배에 들어간 적이 없는 도카라 열도까지 류큐에 포함시켰다가 1950년대 초에 도카라 열도와 아마미 군도를 차례로 일본에 반환했다. 그래서 미국이 세운 류큐 정부의 관할 범위는 오키나와현으로 축소되었고, 이후 1972년에 오키나와현도 일본에 반환된다. 수도는 [[슈리]](首里)였는데, 미국 통치기 이후 오키나와현의 수도인 [[나하시]]의 일부가 되었다. 왕궁은 [[슈리 성]]이다. 인구는 굉장히 적었는데 전성기에도 전체 인구가 17만에 불과했다. 한국의 [[탐라|탐라국]]과 비교할 수 있지만, 본토 왕조의 종속국이라서 외교권이 결여되었던 탐라국과는 달리 류큐국은 자주 외교도 어느정도 수행할 수 있던 독립국이었다. 지리적으로도 제주도에 비해 본토와 훨씬 멀리 떨어져 있고, 제주도보다 훨씬 늦게 본토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독자성이 더 강하다. 또, 수 세기 전에 한반도 본국에 병합되어 본토와 동화되어 온 제주도와는 달리, 류큐는 19세기 말 근대에 와서야 [[일본 제국]]에 병합된 지역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현지 주민들도 본토와 다르다는 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고 그래서 [[류큐 독립 운동]]이 있기도 하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로 독립 주장이 주류는 아니고 소수 의견인 상태이다. 분리 독립 여론이 사실상 없는 수준인 제주도와는 다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